【고우바라주쿠(郷原宿) -ごうばらじゅく-】 위치: 시오지리시 히로오카고우바라
고우바라주쿠(郷原宿)는 젠코지 가도(善光寺街道)가 나카센도(中山道)의 세바주쿠(洗馬宿)에서 갈라져 처음 나타나는 숙박촌입니다. 게이초(慶長) 19년(1614년) 마쓰모토성(松本城) 성주 오가사와라 히데마사(小笠原秀政)가 나카센도(中山道) 세바주쿠(洗馬宿)와 호쿠코쿠 가도(北国街道)를 잇기 위해 젠코지 가도(善光寺街道, 호쿠코쿠와키오칸(北国脇往還))를 정비할 때 만들어졌습니다.
이미 존재하던 집락이 숙박촌이 된 것이 아니라, 고우바라(郷原)의 원래 집락은 나라이강(奈良井川)의 동안(東岸)의 가미노(上野) 지적에 있었지만, 숙역(宿駅) 정비에 따라 같은 강 서안(西岸)의 스미토(住戸) 지적에 있던 가타이시(堅石) 집락과 함께 겐나(元和) 5년(1619년)경 현재의 장소로 옮겨 숙박촌을 만들었습니다.
○고우바라주쿠(郷原宿)의 볼거리
저택 구획이 잘 되어 있어 집집마다 건물의 정면 폭은 5~6간(間)으로 넓고 쓰마이리(妻入り, 박공지붕 측면 출입구) 양식의 혼무네즈쿠리(本棟造)로 참새 방지 장치가 달린 기리쓰마(切り妻, 맞배지붕)가 가도(街道)를 향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또한 가도(街道)와 집 사이에 앞뜰이 있고, 나무가 심어져 아름다운 거리가 조성되어 있으며, 각 집에는 가게 이름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민예 운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悦)는 수필 속에서 고우바라주쿠(郷原宿)의 아름다움을 "숙박촌 전체가 훌륭한 하나의 작품 같다"고 극찬했습니다.
숙박촌 북쪽에는 메이지(明治) 13년(1880년) 메이지 천황(明治天皇)이 순행했을 때 잠시 휴식을 취했던 고후쿠사(郷福寺)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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