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큐 왕국 시대 이제나 섬의 역사와 문화 유산]
■ 제 2 권 "쇼엔오 오니와 공원" 농부에서 류큐의 왕이 된 이야기
24세의 나이에 쇼킨(후에 쇼엔 왕)은 섬을 떠났습니다. 오키나와 본섬을 가리키며 오른손에는 '에케'(노를 젓는 방언)를 들고 있으며, 그때 서 있는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쇼가네는 섬 주민들에게 오해를 받고 섬에서 쫓겨난다. 당시 아내와 어린 남동생을 데리고 작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오키나와 본섬 북부의 구니가미 지구에 있는 기나마라는 지역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서 잠시 형과 아내와 동거하며 현지인들에게 신세를 지고 있지만, 잠시 후 형과 함께 슈리에 간다.
그는 류큐 왕국의 5대 왕 쇼 진후쿠의 동생인 유라이 왕자의 신하가 되었습니다. 그 무렵 자신을 '가나마루'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천성적으로 총명하고 부지런했던 가네마루는 곧 그 자질을 인정받았고, 고시라이 태자는 가네마루를 후쿠 쇼킨 왕에게 신하로 강력히 추천했으며, 1447년 쇼엔은 가신인 아카토(赤臣)라는 낮은 직급의 관리로서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가네마루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고위 관리의 지위를 나타내는 노란색 하치마키를 입을 정도로 계급을 올렸습니다. 그 후 1454년 고시라이 친왕이 제6대 왕 쇼 야스히사로 즉위하면서 더욱 중요한 인물이 되어 1454년에는 니시하라 마키리의 영주(영주)로 임명되었습니다.
5년 후, 45세의 나이로 나라의 재정과 외교를 책임지는 자리에 임명되어 그 결과 오늘날의 장관급에 해당하는 3명의 사령관직을 목전에 두었지만 쇼 야스히사 왕의 죽음으로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제 7 왕 쇼토쿠는 폭군이었고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겨 있었고, 그것을 볼 수없는 카네마루는 그의 의견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카네마루는 관직을 사임하고 영지의 안쪽으로 물러났다.
쇼토쿠 왕이 죽은 후, 그의 가신들에 의한 쿠데타가 왕궁에서 일어났고, 쇼토쿠 왕의 아들은 처분되었습니다. 여기서 제1대 쇼 가문의 치세가 중단되어 가신들이 카네마루를 차기 왕으로 추천하고 결국 그 설득을 받아들여 54세의 나이로 류큐 왕국 제2대 쇼 가문의 왕이 되었다.
■동상 제작:나카 무쓰토시(일본 판 판화가)
구라요시 다카라(류큐대학 명예교수)
※ 두 사람 모두 이제나 섬 출신의 유명한 사람입니다.
* 마츠가니(마치가니) = 쇼엔 왕이 이제나 섬에 있을 때 가졌던 젊은 시절의 이름.
* 가나마루 (Kanamaru) = 섬을 떠난 후의 쇼엔 왕의 이름.
* 쇼엔(松円) = 왕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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